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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구경백 일구회 사무총장

등록일 : 2018-06-05

1989년, 첫 라커룸을 만들며...

 

 

1989년 2월 초, OB 배어스 1·2군 총괄 매니저를 맡고 있던 필자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했다. 당시 박용민 사장이 “잠실야구장에 라커룸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준 것은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의 라커룸 일부를 찍은 사진 한 장뿐이었다. 당시 필자는 라커룸이라는 개념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법. 당시 잠실야구장을 함께 사용하는 MBC 청룡 운영담당자와 만나 라커룸과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MBC 측도 라커룸을 공동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일을 진행할 인력이 없으므로 필자에게 모두 일임했다. 

 

우선 라커룸을 만들 공간이 있는지 야구장을 찾아 확인했다. 다행히도 넉넉한 크기의 창고가 1,3루 덕아웃 부근에 있었다. 게다가 샤워실 기능이 가능한 공간도 창고 옆에 붙어 있어 더할 나위가 없었지만, 88 올림픽 때 사용하고 방치된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이 쌓여있어 이를 청소 하는데 3일이 걸렸다. 

 

이렇게 실측이 가능해진 다음 도면작업과 설계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첫 번째 공사는 라커룸과 샤워실을 잇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업자를 불러 벽을 허무는 작업을 실시했는데 애초 생각한 것과는 달리 벽돌이 2겹이라서 비용이 더 들기도 했다. 라커는 을지로를 비롯한 가구단지와 유명 메이커 등을 알아보았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아 결국 중앙시장 가구센터에 가서 세이부와 비슷하게  제작을 의뢰했다. 

 

또 OB맥주와 코카콜라의 협찬을 받아 음료 전용 냉장고를 들여놨다.샤워실에는 별도 보일러를 설치해 항상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올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야구장 인근의 대형 세탁소와 계약을 맺어 선수들 유니폼을 등을 세탁해주게 됐다. 라커룸과 함께 가족 대기실과 감독실, 웨이트 트레이닝실 등도 만들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라커룸은 3월에 열린 시범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에 공개했다. 라커룸을 둘러본 이광환 감독은 “세이부보다 더 잘 만들었다”며 필자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다만 라커룸과 관련해 큰 문제가 있었다. OB와 MBC는 홈경기 때 1루 라커룸을 썼으므로 어느 팀의 홈경기가 끝날 때마다 이사(?)한다고 분주했다. 예를 들어 다음 홈경기가 MBC이면 OB는 홈경기가 끝나자마자 모든 짐을 3루 쪽 라커룸으로 옮겼고, MBC는 거꾸로 1루 쪽 라커룸으로 옮겼다. 

 

이 민족의 대이동과 같은 일이 끝난 것은 1991년 초였다. MBC를 인수한 LG는 1990년 우승 이후 실내연습장에 인조잔디를 깔고 라카룸과 부대시설을 전면 교체하자고 OB에게 제안했다. 이때까지 실내 연습장은 맨바닥이라서 흙먼지로 인해 연습을 오래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LG의 갑작스런 제안을 받은 OB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부적으로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이에 LG는 독자적으로 3루 실내연습장에 인조잔디를 깔고 라커룸과 여러 부대시설 등을 화려하게 보수했다. 

 

그런데 문제는 3억원 정도의 비용을 들인 LG 입장에서는 OB가 3루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 영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결국 LG는 고민 끝에 3루 라커룸을 전용으로 쓸 생각을 필자에게 밝혔다. OB는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OB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민족 대이동을 끝낼 수 있었고 지금까지 두산은 1루 LG는 3루 라커룸을 사용하고 있다. 2년 후 OB도 실내연습장에 인조잔디를 깔고 라카룸을 보수하면서 선수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많은 야구팬들은 이제 LG가 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3루쪽 라카룸을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풀렸을 것이다. 

 

필자가 1997년 여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장을 방문했을 때 한창 신축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현장소장이 필자와 일행에게 야구장 컨셉에 대한 브리핑을 했는데 기억이 남는 것을 소개하면 1. 관중이 가장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구장 2. 방송 및 취재하기 좋은 구장 3.선수들이 마음놓고 연습 및 경기를 할 수 있는 구장이 목표라 했다.

 

잠실 야구장도 언젠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야구장이 건축될 때 모두가 기대하는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장면을 기대해본다. 

 

 

*구경백 사무총장은?

배명중-배명고-우석대 출신 내야수. 

1979년 동양 맥주 입사. 

1981년 OB베어스 창단에 기여. 

1982~1997년 OB베어스 매니저, 운영팀장, 홍보팀장, 스카우트 팀장 역임. 

1998년 해설위원 변신. 전 대한야구협회 홍보이사. 

2001년 스포츠서울 해설평론상 수상

2001~2010년 KBO 상벌위원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술위원회 위원

2012년 KBO 100주년 사업위원  

현 (사) 일구회 사무총장. IB스포츠 해설위원​